신선설화도(神仙說話圖) – 박복례 작가

민화는 늘 ‘그림 너머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단순한 생활화를 넘어서, 믿음과 기원의 시각적 구현이자, 민중의 상상력이 투영된 집단적 서사다. 지체장애 전통 민화 작가 박복례의 신선설화도(神仙說話圖)는 이 민화의 본질을 현대적으로 계승하면서도, 장애라는 사회적 경계를 미학적으로 뛰어넘는 작업이다. 작품은 한 신선이 한옥의 온돌방에 앉아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있는 듯한 장면을 묘사한다. 그는 붉은 도포를 입고 손에 신령스러운 약초 또는 영물의 상징을 쥐고 있으며, 입가엔 은은한 미소가 맴돈다. 그의 시선과 손짓은 마치 그림 밖 누군가와 대화하듯 살아 있다. 이는 ‘설화도(說話圖)’라는 제목과 절묘하게 어우러지며, 관람자 스스로 이야기를 상상하게 만든다. 화면의 외곽에는 한옥 처마와 그 뒤의 커다란 나무, 잎사귀가 풍성한 화초류가 채워져 있다. 특히 곡선이 강조된 기와지붕, 정성스럽게 채색된 격자무늬 창살, 그리고 식물 하나하나까지 정교하게 묘사된 점은 박복례 작가 특유의 섬세함을 드러낸다. 바탕지 위의 담묵과 채색은 전통 민화의 기법을 충실히 따르면서도, 색상 배합과 장면 구성에 있어 현대적 감각이 엿보인다. 이 그림에서 가장 주목할 점은, 화면의 시간성이 정지되어 있다는 점이다. 신선은 말하고 있지만, 그 순간은 정지되어 있고, 주변의 자연도 움직이지 않는다. 마치 불멸의 공간 속에서 펼쳐지는 한 장면처럼, 이 작품은 '현실'이 아닌 '이야기의 세계'에 발을 디디고 있다. 이는 박복례 작가가 자신의 신체적 제약을 초월하여 상상의 시공간을 창조해내는 방식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