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념산수(觀念山水) – 허철웅 작가

정신장애 작가 허철웅의 회화는 현실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너머의 내면 풍경을 직관적으로 풀어낸다. 그의 작품 "관념산수"는 전통적인 산수화의 구도를 차용하면서도, 현실의 시공간을 넘나드는 독특한 심상 풍경을 담고 있다. 이 작품은 명확한 윤곽을 거부한 채, 감각과 감정이 엉켜 있는 자연을 통해 작가의 세계관을 응축한다. 화면은 붉은빛과 황색이 감도는 하늘과 산맥으로 시작된다. 전통 동양화의 청록산수에서 벗어나, 보다 내면적이며 환상적인 색조를 통해 ‘현실의 산수’가 아닌 ‘관념 속 산수’를 보여준다. 부감법으로 펼쳐진 강줄기는 맑은 청색으로 시선을 이끌며 화면의 중심을 가로지른다. 강물 위에는 노를 젓는 조각배가 평화롭게 떠 있고, 그 주위엔 형형색색의 산봉우리들이 흐릿하게 겹쳐 있다. 이는 마치 어린 시절의 기억이나 꿈에서 본 풍경처럼, 시간과 장소가 명확하지 않으면서도 정서적으로는 깊은 울림을 남긴다. 허철웅 작가는 선형적이고 세밀한 묘사보다는 과감한 붓 터치와 대담한 색면 분할을 통해 대상을 표현한다. 나무들은 간결한 점묘로 묘사되며, 인위적이지 않은 비율과 원근법은 오히려 그림에 생명력을 부여한다. 그의 산은 기이하게 솟아오르고, 나무는 어린아이의 그림처럼 단순하지만, 바로 그 ‘단순함’이 이 작품의 본질이다. 단순한 도식화 속에 담긴 진솔한 감정과 본능적 구성이야말로 이 작품의 가장 큰 미덕이다. 작가의 이 작품은 단순한 자연 묘사를 넘어서, 마음의 풍경을 시각화한 ‘감각의 지도’이자 ‘회화적 자화상’으로 기능한다. 이 작품은 보는 이로 하여금 현실의 풍경을 다시금 관찰하게 만들며, 동시에 우리가 간직한 내면의 세계를 조용히 들여다보게 한다. 허철웅 작가의 회화는 지금 이 시대의 예술이 감히 잃어버린, 정직한 시선과 치열한 자기 탐구의 표본이다. 그의 "관념산수"는 그래서 더없이 아름답고, 동시에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