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견을 뜻하는 영어 단어 ‘prejudice’는 어원적으로
‘사전(pre-) 판단(judgement)’ 내지
‘선험적 판단’을 의미한다.
인간은 공간적·시간적·관계적으로
제한된 삶을 살아가기에
모든 것을 다 경험해서 판단할 수는 없다.
즉 어떤 면에서 인간에게 편견은 불가피하다.
따라서 중요한 건 편견 그 자체가 아니라
우리에게 편견이 존재함을 아는 것,
그리고 소통과 배움을 통해
그러한 편견을 끊임없이 수정하고 변화시켜 나가려는
태도일 것이다. – 김도현 노들공동체연구원
결핍이 아니라 다름이다, 다른 것은 신선한 것이다.
적어도 창작의 세계에서 만큼은…
예술에서 다름은 또 하나의 오브제일 뿐이다.
사회적 통념이 무서운 거다,
사람들의 편견이 무서운 거다.
“재능은 있다지만 우리랑 다르잖아. 익숙하지 않아.
네가 나보다 더 나을 수 없어, 같이 있고 싶지 않아.
불편해..”
그러다 보니 모든 것이 어려워졌다.
하고 싶은 것도 할 수가 없다.
내가 그린 그림을 아무도 좋아해 주지 않으니
난 오늘도 생계를 위해 편의점에 나간다.
하고 싶은 열정과 재능을 생계로 인해
포기하지 않도록
오늘도 편견을 수정하고 변화시키는
작은 소통을 시작하려 한다.
그는 베일이 싸인 작가이다. 수십년간 작품활동을 했음에도 작품을 잘 전시하지 않는다. 그저 지역사회에서 기획된 그룹전에만 출품할 뿐이다. 그의 후광에 몇몇 신진작가들이 데뷔하며 활발히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그의 수많은 작품을 세상에 알리고 싶다. 수십번의 전화에도, 몇 번에 걸쳐 그의 집을 방문했음에도 문턱을 넘지 못했다. 그의 작품을 조그마한 전시회에서 조심스레 사진을 찍고 도망치듯 쫒겨 나왔다.
상상못할 고통에서 원망과 체념만이 있었다.
왜 나였는지도 수없이 물었다.
이것이 과연 신의 뜻인지 저항도 해보았다.
먼저 신의 뜻을 받고 선택받은 자로서
그만의 가지고있는 특유의 승화를 보여주고 있다.